국가유산 담당부서 : 문화유산정책과 - 상세문의
국가유산 설명

수국사는 세조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懿敬世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덕종'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고자 1459년(세조 5) 그의 묘(후에 경릉(敬陵)으로 추존) 근처에 지은 왕실 원찰(願刹)이다. 창건 당시 명칭은 정인사(正因寺)였으나, 1471년(성종 2) 소혜왕후가 중창한 이후 수국사(守國寺)로 개명하였으며, 조선시대 동안 서오릉(西五陵: 창릉·경릉·명릉·익릉·홍릉)을 관리하고 왕실을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찰로서 기능하였다.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제작연대가 적힌 발원문이 없어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후한 얼굴과 건장한 형태미 그리고 이중으로 입은 착의법과 자연스러우면서 특징 있는 옷주름 등에서 13세기에서 14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이 유사하다. 즉, 힘과 중후함이 느껴지는 얼굴과 신체는 물론 왼쪽 어깨에서 짧고 촘촘하게 흘러내린 주림이 좁은 겹 오메가(Ω)형의 주름을 형성하고 있는 점과 금구 장식 없이 간결하게 처리된 승각기의 표현 등은 서산 개심사 아미타여래좌상(1280년 중수), 서울 개운사 아미타여래좌상(1274년경),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 13세기 중·후반 경의 불상들과 비교된다. 특히 이 불상에서 느껴지는 중량감 넘치는 건장한 남성적인 형태미는 고려후기 귀족풍의 단정하고 아담한 형태미를 추구했던 하나의 조류와는 또 다른 불교조각의 흐름과 미의식을 알려 주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이미지